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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커: 폴리 아 되 (2024)
    personal blog/소파 위 감자 2024. 10. 1. 23:50

    Joker: Folie à Deux

    - 본 곳: 메가박스 돌비 애트모스

     

    - 한줄평: 내게 이 영화는 납득 가능한 수준의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와 같다

     

    - 감상평:

      10월 1일 국내 개봉하자마자 바로 예매하고 관람했다. 마침 상영 시간도 적절하겠다 싶어서 비싼 돌비 애트모스관 티켓을 끊었는데, 다 보고 나니 그렇게 공간감 풍부한 오디오는 필요 없긴 했겠다 싶었다. 이 영화는 관객 입장에서의 예상을 많이 벗어나는 영화고, 그런 맥락에서 (골프 팡야씬, 과도한 PC적 캐릭터 및 불쾌한 플레이 강요가 없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메인 디렉터 닐 드럭만은 1편 자체로 온전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에 속편을 원래 제작하지 않으려 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팬들의 요구에 그는 속편을 제작하게 되었고, 메인 캐릭터 엘리를 비극적인 결말로 몰아내세우며 제작자로서 게이머들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이야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소비하지 않고 있고, 제작자로서 본인이 더 조명받았으면 하는 방향이 따로 있음을 (다소 불쾌하고 불필요한 수준까지) 역설했다. <조커2>는 <라오어 파트2> 만큼이나 불쾌할 지경까지 이를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제작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덜 주목받은 측면을 내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방향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제작 계획이 없었던 속편, 이번 작품의 충격적인 결말까지.

      <조커2>는 우선 이전 작품무조건 함께 봐야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DC코믹스 세계관 설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전 작품에서 최소한의 배트맨과의 연계성을 고려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히 DC코믹스의 스핀오프 격인 이야기로 독립했다고 생각한다. 이전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절대 절대 절대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이 작품을 보면서 가져야 할 주된 질문은 "사람들은 아서 플렉/조커에게 어떤 모습을 바라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서 "사람들"이란 영화 내 인물들 — 증인들, 아서를 비난하는 검사 측과 아서를 감싸려 드는 변호사 측을 포함, 재판장에 서는 주요 인물들부터 재판장 밖에 조커를 열렬히 지지하는 관중들 — 그리고 영화 밖에서 <조커2>의 출시를 바라는 관객들까지 확장될 수 있다. 나는 <조커2>에서 아서 플렉에게 어떤 모습을 원했을까? 빌런으로 각성한 뒤 할리 퀸을 만나 더욱 비극적인 학살극을 그리는 모습? 고담 시를 불태워버리려는 대중들에게 강렬한 불씨가 되어주는 모습?

      토드 필립스 감독이 그린 조커는 사회로부터 고립당한 외톨이이자 아무에게도 공감, 위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편에 그려졌다. 이전 편의 결말에서 그는 시위대가 내세우는 심볼로 추앙받고, 이번 편에서도 그러하지만, 사실 아서 플렉은 사람들 앞에서 의도를 갖고 정치적으로 선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영화 안팎으로 조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조커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에만 집중한다. <조커2>의 아서 플렉을 가운데에 두고 검사 측과 변호 측은 아서 플렉과 조커가 서로 다른 인격인지 아닌지에만 열띤 토론을 벌인다. <조커2> 스토리 초중반부쯤 아서 플렉은 자꾸 이런 피곤한 질문을 하는 인터뷰어에게 신경질을 내며 "머레이 같다"라고 하지만, 이내 자신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괜찮다며 노래를 부른다. 아서는 리 퀸젤이 주는 사랑에 크게 기대며, 재판이 지속되는 동안 자신이 받는 무시, 멸시, 비난, 조롱을 모두 견딘다. 그러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도 해고해 버리고, 증인석에 선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불쌍한) 개리에게도 "머레이 같다"라고 한 뒤, 청중석 모든 사람들을 손가락질한다. 아서 플렉은 불안한 정신 상태에서도, 리 퀸젤에 대한 사랑과 행복한 망상에서 버틴다. (중간에 리 퀸젤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며 불신과 불안에 휩싸이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 중후반 어느 시점에 아서 플렉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조커"의 이미지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리 퀸젤은 떠나버린다. 아서 플렉은 마지막 판결이 선언되기 직전 테러를 당한 재판장에서 빠져나와 조커의 추종자에 의해 구조되지만, 이들의 손마저 뿌리친다. 변호사도 뿌리치고, 조커의 추종자도 뿌리친 아서는 리 퀸젤을 극적으로 만나지만, 여기서 리 퀸젤이 사랑했던 것은 아서 플렉이 아니라 조커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아서는 이후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제목 "Folie a Deux", 즉 "공유 정신병"이란 말이 무색하게, 아서의 사랑은 자기 자신만의 망상이었던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재판장에서 과거에 연애본 적이 없는 아서의 망상 내용까지 불필요할 정도로 증거로 끄집어내서 사람들이 아서를 조롱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결국 아서는 인생 내내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전 작품을 리뷰하는 유튜브 영상들이나 예능들에서, 아서가 머레이를 포함해 혐오하는 대상은 "기득권"을 뜻하는 것으로 많이 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는 <조커> 영화 결말에 비기득권층 시위대가 기득권에게 단체로 테러와 폭력 시위를 가하기도 했으니, 말이 되는 풀이었다. 하지만, 아서가 여기서 말한 "머레이 같다"는 비난은 자신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퍼붓는 인터뷰어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은 개리에게도 향한다. 이전 작품에서도 그는 같은 사회적 계층의 랜들을 살해한 바 있다. 어쩌면 <조커2>에서 아서가 "머레이 같다"며 욕하는 대상은 기득권 여부, 사회 계층, 정치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듦으로써, "세상은 <조커>를 정치적이고 폭력적이며, 위험하고 선동적인 작품으로 소비했지만 그건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우리의 의도는 사회로부터 처절히 버림받은 아서 플렉이 이해받고 사랑받길 원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를 다보고 곱씹어 보았을 때, 아서는 영화 내내 키스를 많이 한다는 걸 기억해 냈다. (리 퀸젤에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노래를 누가 부르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에서 또는 망상에서 부르고 있는지도 다시 돌이켜보니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영화가 나중에 OTT로 나온다면 이런 요소들에 집중하고, 아서 플렉과 그가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집중하면서 2회차를 다시 볼 것 같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은 <조커> 개봉 전에도 "조커다움"을 강요받은 캐릭터이며, 영화 안팎으로 비난을 당하기도,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정치적인 심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커에게 환호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 어떤 사람들도, 아서 플렉이 가족, 애인, 코미디 클럽의 관객들로부터 받고 싶었던 사랑을 주진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이 변호사나, 상담사, 의사 등 전문적인 도움을 뿌리치면 ㅈ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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