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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물흐물academic blog/그쪽도 물박사님을 아세요? 2023. 7. 17. 02:00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시험이 끝나고 난 마지막 수업날, 두 교수님께서 상반된 클로징 멘트로 학기를 마치셨다.
난 내 전공학과 W 모 교수님의 인공지능 과목이 흥미로웠지만 하나도 못 알아들어 머리에 남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데이터와 통계, 머신러닝에 흥미가 생겨 막학기 때 교수님께 부탁을 드려 청강을 했다. 수업을 담당하셨던 W 모 교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학생들을 격려하시면서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면, 어디든 가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물 흘러가듯 살아라." 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셨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금융경제에는 잼병이다. 내 평생 유일하게 받은 F학점도 졸업요건 충족하느라 당시에 골랐던 경제 관련 교양이었다. F를 쳐맞아버리고 복학한 뒤 막학기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수강신청에 성공해서 다시 수강한 그 문제의 교양과목은 F학과의 전공핵심과목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고, 난 가까스로 C+를 받았다. F는 면해서 기뻐하는 등신 같은 나, 그리고 다른 똑똑한 수강생들에게 C 모 교수님께서는 "물 흘러가듯이 살면 남들과 똑같이 살게 된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시며 학기를 마치셨다.
흘러가며 살든, 흘러가지 않으며 살든, 일단 내 학점은 확실히 물이긴 하다. 생각해 보면 이 학점으로 내가 석사를 딴 대학원에 붙은 게 용한데, 그 용케 붙은 대학원에서도 내 지도교수님보다 못한 열정으로 임해서 논문 아웃풋의 기회들을 살리지 못한 게 안타깝다. 졸업시즌이었는지 취업시즌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여튼 그 무렵에 "물석사"라는 표현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나는 물이요, 내 학부 학점도 물이요, 내 지금까지 논문 아웃풋도 물이로다. 그렇다면 유사과학에 따라, 착한말을 많이 해주면 이쁜 결정이 될 수 있을까? 이딴 개소리 밖에 생각이 안 난다. 글 어떻게 끝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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